예일대학교 도서관 근처 풍경

뉴헤이븐에 모든 짐을 풀고 집도 정하고 조금씩 도시가 익숙해 질 즈음 예일에서의 첫 학기가 시작했다. 사실 예일에 입학하기 전에 석사 프로그램이 2년 과정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학과 홈페이지에 가면 학과 신입생들이 읽어야 하는 가이드가 있는데 귀찮아서 읽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입학하고 나서 읽으니 석사 프로그램이 1년에서 4년까지 유동적으로 할 수 있는데 일정 이상의 성적이 되어야지 졸업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만일 1년에 마칠 역량이 된다면 1년에 끝내도 되고, 시간이 안 되고 역량이 부족하다면 4년까지 지속할 수 있는데 졸업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예일 전산학과 대학원에서 석사로 졸업하기 위해서는 학점 평균이 High Pass 이상이 되어야 하고 Honor 학점도 최소 하나가 있어야 한다. (예일은 특이하게 A, B, C 식의 학점이 아니고 Honor, High Pass, Pass, Fail 식의 학점을 준다. 그리고 Honor 학점을 받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 그리고 그 당시1년에 $32,500에 달하는 학비는 결혼해서 바로 유학 온 본인의 가족에게 큰 부담이었다. 그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첫 번째가 1년 안에 졸업하는 것, 그리고 두 번째가 졸업 후 바로 취업이었다.

예일에 공부한 첫 학기는 상당히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미국에서 정규 학위를 한 것은 처음이었고 그것도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교에서 뛰어난 친구들과 경쟁을 한다는 것이 많은 부담으로 다가왔다(실제로 중국에서 온 동기들의 이력서를 보게 된다면 그 학교 학과 수석도 꽤 있었고 칭화대(Tsinghua)를 졸업한 재원도 꽤 있었다). 언어적 충격, 문화적 충격, 그리고 학업적 충격이 모두 겹쳐서 첫 학기에 느꼈다는 것이 제일 간단하게 예일에서의 첫 학기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예일대학교 전산학과(Computer Science Dept.) 건물

아무튼, 첫 학기의 성적은 정말 처참했다. 첫 학기는 컴파일러(Compiler and Interpreter),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분산 시스템(Building Decentralized Systems), 객체지향 프로그래밍(Object-Oriented Programming), 그리고 연구 윤리(Ethical Conduct of Research)를 들었는데 가장 열심히 했고 재미있게 들었던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은 아쉽게 High Pass를 받았고, 어느 정도 선방한 분산 시스템도 High Pass를 받았지만, 컴파일러와 인공지능 수업에서는 Pass 밖에 받지 못했다. 사실 대부분의 석사 동기들이 Computer Science(이하 CS)를 학부에서 전공했기 때문에 이 수업은 학부에서 듣고 다시 대학원에서 좀 더 높은 레벨로 듣는 것이다. 나는 학부에서 CS가 아닌 Electrical Engineering(이하 EE)를 전공했기 때문에 Data Structure이외의 CS수업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KAIST의 전자와 전산이 졸업 시에 통합되어 졸업증서에는 EECS로 나오지만 실제 세부 전공은 EE). 그래서 첫 학기에서 이렇게 고전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두 번째 학기는 모바일 컴퓨팅 및 무선 통신망(Mobile Computing and Wireless Network), 계산 비전 및 생물학적 지각(Computational Vision and Biological Perception), 데이터베이스(Introduction to Databases), 통계 유전학 및 생물정보학(Statistical Genetics & Bioinformatics)를 들었는데 정말 많은 스트레스 속에서 공부를 했다. 우선은 첫 번째 학기에 좋지 않은 성적이 나왔기 때문에 전체 학점을 만회하기 위해서 최소 2개의 Honor를 받아야 했다. 한 학기에 Honor 한 개를 받아도 감지덕지한데 Honor 2개를 받는 것도 무리수로 보였고 다른 과목들도 최소 High Pass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본인이 느끼던 부담감은 상당했다. 또한, 두 번째 학기에 취업 인터뷰를 계속 보면서 취업 준비에도 상당한 준비를 해야 되었기 때문에 하루에 3~4시간을 취업 인터뷰에 할애했다.  만일 전화 인터뷰가 들어오면 공강 시간에 인터뷰를 잡아서 보고 나머지 시간에는 새벽 3~4시까지 학과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에 몸도 마음도 정말 힘든 시기였던 것 같다.

그 시절 내가 졸업할 수 있을지 그리고 미국 취업을 할 수 있을지를 가지고 항상 고민하고 염려했던 것 같다. 우선 경제적인 문제가 관건이었다. 한 학기 정도 생활 할 비용을 들고 와서 나머지는 예일에서 제공했던 국제 학생론(International Student Loan) 프로그램으로 감당을 하고 있었는데 만일 한 학기를 더하게 된다면 한 학기 학비 대충 2000만원에다 의료 보험, 아파트 렌트비, 그리고 생활비를 합해서 거의 3000만원의 비용이 들게 된다. 그리고 만일 어떻게 졸업은 하더라도 미국 취업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OPT 문제로 졸업 후 3개월 정도 안에 미국을 떠나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럴 경우를 대비해서 다른 대책도 마련해 놓아야 했다 (미국 내 무임금 인턴을 하거나 다른 학교에 전학하는 방법 등이 있었다).

지금은 아련한 추억이 되었지만 그 시절만큼 고민이 많고 힘든 적은 많이 없었던 것 같다. 결혼해서 바로 미국에 왔기 때문에 가족도 돌봐야 하고 내 갈 길도 개척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로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잠을 줄이고 날마다 입사 지원을 하고 전화 인터뷰 기회가 생기면 어떤 일이든 마다치 않고 우선 인터뷰를 봤었다. 그 당시 나에게 회사를 골라간다는 것은 사치였다. 무조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채용하는 곳이면 연봉, 조건 상관하지 않고 지원을 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어떻게든 졸업을 1년에 하기 위해서 공부에 매진해야만 했었다.

두 번째 학기를 마치고 성적이 나오는 것을 기다리면서 가슴을 졸여야만 했다. 내가 한 학기 동안 열심히 한 결과에 따라서 내 인생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만일 이 학기를 끝내고 졸업하지 못한다면 최소 한 학기를 더 해야 하고 그러면 생활비를 합해서 3000만 원의 비용이 더 들게 된다. 그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지부터 계획이 없었고 안 그래도 온 힘을 다해서 석사 과정을 보내고 있었는데 어떻게 한 학기를 더 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최종 성적이 뜨는 날 성적을 확인한 순간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번 학기에는 하나도 받기 힘든 Honor 학점을 3개나 받은 것이었다. 첫 학기에 Pass를 두 개 받아서 High Pass 평균으로 졸업하기 위해서는 Honor를 2개 이상 받아야 했는데 다행히 졸업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당시 나의 Academic Advisor였던 Holly Rushmeier 교수님도 내 1학기 성적이 좋지 않아서 졸업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2학기 성적이 아주 잘 나온 것을 보시고 아주 기뻐해 주셨다. 예일에서의 1년은 정말 고달프고 힘들었지만 주어진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품고 최선을 다하면 길이 조금씩 열린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시켜 준 계기가 되었다.

예일 석사 시절의 성적표. 지금은 한 장의 종이로 남아 있지만 나에게는 그 시절의 고생과 노력의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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