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다가 2007년 말 미국 MBA 프로그램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먹고 미국 경영대 진학 시험인 GMAT(Graduate Management Admission Test)을 공부하고 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카이스트 시절 벤처 기업에 근무한 경력과 학교 졸업 후 병역특례를 하면서 중소기업에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MBA 프로그램에 진학해서 미국 취업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당시 지원한 학교가 하버드의 HBS(Harvard Business School), MIT의 Sloan, 스탠포드 GSB(Graduate School of Business), 유펜의 Wharton, 컬럼비아, NYU, 시카고, UC 버클리, 미시간 대학교(앤 아버), UCLA의 Anderson으로 10개 학교였다. 각 학교마다 작성해야 되는 에세이도 너무 다르고 원서비도 너무 비쌌기 때문에(학교당 거의 250달러 이상이었다) 10개 학교만 지원하기로 하고 분주하게 필요한 과정을 거치기 시작했다.

약 6개월 정도 열심히 원서 작성을 끝내고 설레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하나씩 불합격 결과가 도착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지원한 10개 학교 모두에서 리젝트를 받게 되었다. 물론 하나라도 가기 힘든 탑 10의 학교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하나쯤은 기대했었는데 몇 주동안 실망감과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지금(2015년)은 7년이 지난 후이기에 왜 내가 다 떨어졌을까 생각을 해보면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 2008년에 미국에 서브프라임 위기가 터지면서 미국 대학원의 경쟁률이 급격히 높아졌다. 원래 경기가 좋지 않으면 미국 직장에 정리해고가 많아지고 구직자들은 직장을 찾기가 더 힘들어 지면서 많은 인력이 갈 길을 찾지 못한 채 고용 시장에 나오게 된다. 이런 경우 많은 사람들이 대학원에 들어가 새로운 학위를 따서 더 높은 연봉과 대우를 받을 것을 갈망하게 된다. 그리고 대학원에 들어가서 학위를 따는 몇 년 동안 경기가 회복되어 나중에 대학원을 졸업할 쯤에는 직장을 찾기 쉬울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공부를 새로 시작하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의 경기가 2008년 바닥으로 추락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MBA에 지원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입학 허가를 받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 되었다.
  • 에세이의 영어가 부족했고 내 이야기를 잘 풀어나가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영어가 부족하기도 했는데 짧은 시간 안에 에세이를 작성한다고 좀 더 깊이 고민해보지 못하고 MBA 에세이를 쓰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중에 영어를 잘 아는 지인에게 이 에세이를 보였을 때 영어가 많이 부족하다고 진심 어린 조언을 많이 듣기도 했었고 MBA 에세이 질문에 나만의 대답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 것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상 나만의 이야기를 심사관들의 마음을 움직일만큼 풀어내는 것은 그 당시 나의 역량에 비추어 부족했다고 생각된다.
  • GMAT 점수가 충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 당시 탑 10 비즈니스 스쿨의 MBA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보통 정해져 있는 마지노선이 700점이었다. 그 해에 5번의 시험을 봤지만 본인은 680점이 최고 점수였다. 그래도 그걸 감수하고 지원을 했는데 아무래도 커트라인 밑의 점수가 어느 정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 당시 다른 탑 스쿨에 가신 분들의 점수를 보면 700점이 분명히 안되는 분도 있었다. 입학 여부가 모든 것이 복합적인 것이지만 GMAT 점수가 높았으면 좀 더 가능성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 한국 분들의 추천서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신뢰를 주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학교 다닐 때 벤처 기업에서 1년 반, 그리고 졸업 후 병역특례 회사에서 3년 정도를 일하면서 그 당시 상사분들께 추천서를 받았는데 우선 다닌 기업들이 삼성이나 LG 같은 이름 있는 대기업들이 아니었고 글로벌 기업도 아니었다. 그리고 한국 분들에게 추천을 받아서 입학 사정관들이 그 분들의 추천서를 신뢰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MBA 프로그램에 올리젝을 당한 후에 마음을 추스리면서 다음 진로를 준비했다. 우선은 MBA를 가기에는 내 상황과 커리어가 부족한 것 같았다. 그래서 이제는 일반 대학원으로 마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2008년 8월에 경영대를 졸업하고 미국 경영 대학원에 박사를 지원할 생각을 갖게 되었다. 경영대의 경우 석사 없이 바로 박사를 갈 수 있는데 물론 그 경쟁은 아주 치열하다. 미국에서는 경영대 박사를 많이 뽑지도 않거니와 전세계의 수많은 인재들이 경쟁해서 입학하려고 하는 곳이라서 들어가기가 정말 힘들다. 경영대 박사에 비하면 MBA는 상대적으로 들어가기가 쉽다. MBA에 비해서 요구되는 GMAT점수도 낮거니와 (보통 탑 10스쿨의 경영대 박사 과정을 가려면 GMAT점수가 750정도 되는 경우가 많다) 몇 천명에 달하는 MBA 입학자에 비해 같은 학교의 경영대 박사 과정 학생은 10명도 채 안 될 정도로 소수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뚫고 경영대 박사를 받게 된다면 미국 내에서의 취업은 상당히 용이하다. 괜찮은 학교에서 경영대 박사를 받고 졸업했다면 경영대 교수가 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고 연봉도 다른 학과에 비해 경영대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는 최대한 박사를 적게 배출해서 졸업생의 질과 양을 조절하려는 미국 경영대학원 커뮤니티의 노력도 있는 듯하다. 그 높은 관문을 뚫기는 힘들지만 그 문을 통과하면 미래가 상당히 밝게 열리는 것처럼 경영대 박사 과정이 바로 그런 종류의 과정이었다.

서울대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알게 된 한 교수님의 추천으로 조지 워싱턴 대학교의 경영대 박사 과정에 지원했다. 경영대 박사 과정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GMAT 점수를 보내도 되고 GRE(Graduate Record Examination) 점수를 보내도 되는데 본인은 새로 GRE도 공부해서 어느 정도 점수를 만들어 놓았다. 일반 대학원의 에세이는 MBA에 비하면 상당히 간편했다. SOP(Statement of Purpose)라고 단 한 편의 에세이만 쓰면 되는데 이 글에 본인이 살아온 과정,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연구 등이 복합적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원서를 마무리하고 지원을 했는데 2009년 2월쯤에 그 곳 교수님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학과 교수님 인터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20분 정도의 짧은 인터뷰였지만 경영대 교수님 4분을 상대로 질문 답변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당시 시간으로 새벽이었지만 자취하던 방에 인터뷰 예상 질문과 답변을 온 방에 붙여 놓고 진 땀 흐르는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모든 분들의 질문을 대답한 뒤 마지막에 앞으로 하고 싶은 연구를 얘기하고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괜찮게 한 것 같았다.

나중에 그 학과 교수님을 통해서 들은 얘기에 의하면 인터뷰는 괜찮게 통과해서 경영대 학과 추천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지원자들과의 경쟁이 치열했는지 마지막의 학교 레벨의 추천은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 당시 나를 추천했던 교수님의 메일을 보면 아직도 그 때 생각이 나서 마음이 참 아프다.

Mr. Lee,

I would like to inform you that you were not admitted to the doctoral program to the decision sciences department. (…중략…) the application went through the department level but the hurdle was higher at the school level.
I was not planning to inform you the result and let you wait until you receive the formal letter from the school, but out of courtesy, I am letting you know so that you can make proper plans for your future. Personally, I think your scores (GRE and undergrad institutions GPAs) and records are all good so if you plan to apply at other schools (I am not sure whether they still accept applications), I still believe that you have a chance to receive admissions from major US institution.

Best of luck on your future endeavors.

마지막 문장을 보면서 이제 어떡해야 하는지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학교는 졸업하고 1년이 지났는데 MBA와 경영대 박사를 모두 실패한 나로서는 더 이상의 옵션이 없었다. 그리고 그 해는 조지워싱턴대의 경영대 박사 과정에 가겠다고 늦게 결정해서 다른 학교에 지원하는 것은 이미 시간이 늦은 상태였다. 한 몇 주간을 미래에 대한 방황 속에서 보냈던 것 같다.

조금 정신을 추스리고 다시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 나이가 이제 서른이 되었으니 분명 더 이상 지체하기는 힘들었다. 취업과 결혼을 심각하게 되는 나이에 아직 미래의 방향도 결정하지 못했으니 점차 초조해지고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나에게 한번 더 기회가 올까? 나는 다시 기회가 온다면 그것을 붙잡을 수 있을까? 아침을 고시 식당에서 먹고 바쁘게 과외집에 달려가면서 내 미래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었다. 국내에서 취업을 해야 되는 것일까? 이제 유학은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을 하기로 했다. 학원 강사를 해볼까 싶어서 학원에 가서 면접을 봤었는데 한달 내내 일하고 70만원 주겠다는 말에 기가 차서 관두기도 했었고 학원을 차리는 것도 알아보기도 했었다. 또 시계에 대해서 관심이 생겨 종로에 시계 수리 학원에 3개월동안 다니면서 시계 수리를 배우기도 했었다. 시계를 수입해서 온라인에서 장사를 해보려고 이것 저것 알아봤었는데 도매처도 찾기가 힘들고 온라인 상의 경쟁이 너무 심해서 노력에 비해서 이득이 별로 없겠다 싶어서 그것도 관두기로 했다.

한편으로는 다국적 기업의 면접을 다니기도 했다. 여러 컨설팅 회사에 입사지원서를 넣었는데 맥킨지에서 연락이 와서 회사에 가서 시험을 보고 면접도 봤었지만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탓에 고배를 마시기도 했었다. 컨설팅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몇 달 동안 토론과 면접 연습을 하고 예상 문제도 같이 풀면서 준비를 하지만 본인은 아무 생각없이 입사 원서를 넣었는데 면접을 오라는 말에 준비도 없이 가서 얼떨떨하게 면접 문제를 풀다가 떨어지고 말았다. 면접에 갔을 때 맥킨지의 컨설턴트와 1시간 정도 시간을 가졌는데 내 이력과 앞으로 하고 싶은 분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메인 질문으로 은행 지점을 몇 개 세우면 되겠느냐는 질문에 여러 고민을 하면서 내 의견을 피력하였다. 이런 류의 질문을 예상을 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준비한 적은 없었기에 조금 횡설수설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암튼 1시간의 면접 시간이 끝나고 집에 돌아갔는데 예상대로 다음 날 다른 단계의 면접으로 올라갈 수는 없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 때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컨설팅 회사를 가려면 그곳의 면접을 통과하기 위해서 또 다시 피나게 연습하고 면접을 준비해야 하는데 그걸 시작할지 말지 많은 생각에 잠겼다.

내가 무엇을 원하려고 컨설팅 회사에 가려는 것일까? 높은 연봉, 아니면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 다닌다는 사회적인 명성? 기본으로 돌아가서 내가 정말 컨설팅에 맞는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결론은 아니었다. 그쪽 일에 관심이 있기 보다는 나는 외부적인 것들과 혜택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 생각에 다다르고 나서 나는 내 미래에 대해서 다시 한번 깊이 고민해보기로 했다.

이미 두 번의 고배를 마셨지만 기회가 완전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미 나이가 어느 정도 있기는 했지만 아주 많은 것도 아니었다. 아직 마지막 도전을 하기에는 결코 늦지 않은 때였다.

그 생각에 다다르자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조금 명확해졌다. 다시 한번 미국 유학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마음이 서자 서류 합격을 하고 면접 일정이 잡혀있던 컨설팅 회사에 전화해서 면접에 불참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강남에 GRE학원을 등록하고 내가 지원할 학교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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