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학기 (5) – 뉴헤이븐(New Haven) 에피소드

2010년 8월 5일에 뉴욕 JFK 공항을 통해서 미국에 입국하게 되었다. 미국은 세 번째 방문이었지만 오랜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어서 나에게는 여전히 미국은 낯선 나라였다. 다행히 한국에서 미리 만나 알고 있었던 예일 로스쿨에 다니던 친구들이 미리 마중을 나와 있었고 한 한인 교회의 사모님께서 운전을 해주셔서 별 문제없이 뉴헤이븐까지 올 수 있었다.

사실 미국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예일대가 위치한 뉴헤이븐이라는 도시에 대해서 검색을 해보았다. 내가 찾아본 정보에서는 뉴헤이븐에 대해서 좋지 않은 얘기가 많았다. 우선 치안 문제가 좋지 않아서 다운타운에는 밤에 걸어다니지 말라는 것이었다. 미국은 가난한 사람들이 도심에 살고 부유한 사람들이 교외에 사는 경우가 많은데 뉴헤이븐도 이와 비슷하다고 하였다. 범죄율이 높은 도시여서 밤에 나가는 것은 절대 안되고 낮에도 다닐 때 사람들이 많은 거리로 다니라는 조언도 보았다.

JFK 공항에서 뉴헤이븐까지는 거의 2시간이 걸렸는데 예상했던 대로 뉴헤이븐의 처음 인상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어두침침하고 음침한 도시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고 그렇게 반가운 느낌은 들지 않았다.

숙소는 다행히 수소문해서 알게 된 한 예일 경제학과 박사 과정인 형의 방에 묵게 되었다. 처음 와이프와 미국에 도착했을 때 그 형은 한국에 계셔서 보지는 못했지만 자기 방을 빌려 줄 정도로 좋으신 분이셨다. 그 방에서 짐을 풀고 샤워를 한 다음에 정말 오랜만에 깊은 잠에 들었던 것 같다.

문제는 다음 날이었다. 그 아파트는 전체 빌딩이 10층 정도의 큰 아파트였는데 상당히 많은 수의 입주자들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건물 입구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출입 카드가 없으면 문을 열수도 없었으며 낮에는 관리인이 앞에 앉아 있어 어쩔 수 없이 마주쳐야 했다. 관리인에게 낯선 얼굴이었던 나와 와이프는 몇 번 들락날락하던 중에 우리가 어디를 방문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듣게 되었다. 나는 잘 안 되는 영어로 설명을 하며 우리가 아는 사람의 방을 서블렛(Sublet)했으며 한동안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서블렛이라는 것은 렌트한 방을 다른 사람에게 일정기간 빌려주는 것이다. 사실 여름에 한국을 방문하는 일이 잦은 한국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서블렛하는 것이 빈번하지만 집주인이 알면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이 좋아하지 않는다) 이게 실수였다. 이 아파트는 서블렛이 금지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 관리인은 당장 우리에게 1층 끝에 위치한 관리 사무실에 가서 얘기하라고 했다. 관리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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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학기 (4) – 27개의 미국 대학원에 지원서를 쓰다

12월에 한국에 다시 돌아와 원서를 마감하기 시작했다. 2009년도에 당시 미국 대학원들의 원서 접수 마감은 12월 15일까지였다. 보통 원서 접수를 하는 대학교를 정하는 것은 U.S. News의 미국 대학 랭킹과 전공 랭킹을 많이 참조하게 된다. 그 랭킹을 보면서 나는 Computer Science 분야에서 1위부터 50위까지 대학 리스트를 다 뽑아놓고 모든 대학교의 CS 대학원 홈페이지를 들어가서 정보를 수집하고 엑셀 파일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원래 계획은 미국 대학원 40개에 지원하는 것이었다.

사실 미국 대학원에 40개나 원서를 쓰는 것은 아주 특이한 것이다. 교차 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실 40개를 쓰든 100개를 쓰든 상관이 없지만 다 합격이 된다해도 입학하는 대학원은 하나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40개나 쓰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은 2년 전에 MBA를 미국 10개 대학에 썼지만 올리젝을 받은 기억 때문이다. 그래도 10개 중에 하나는 걸리겠지 하는 생각으로 원서를 썼는데 웬걸 모든 대학에서 나를 거절했던 것이다. 충격도 많이 받았고 그 다음 계획도 없었기 때문에 많은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듬해에 지원한 경영학 박사 과정도 그 대학의 교수님께서 관심을 가져주셔서 지원하게 되었고 최종 단계까지 갔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고배를 마시게 되어 또다시 실패를 맛보게 되었다. 2년의 연이은 유학 실패로 내 자신이 위축된 까닭도 있지만 나이도 30살이 된 즈음에 이제는 마지막 도전이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탑 20위 대학에 안 되면 탑 50위 권 내의 대학에는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불가능하지만 40개의 대학에 원서를 쓸 생각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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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학기 (3) – 애리조나에서 다시 만나 본 미국

그렇게 다시 마음을 다잡고 GRE와 GMAT공부에 전념하고 원서 준비를 하던 찰나 외삼촌의 전화를 받았다. 외삼촌은 이미 아들이 조기 유학을 가서 당시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어서 유학과 관련된 여러 상황에 밝으셨고 내가 유학에 두 번이나 실패한 것을 알고 안타까워 하셨다. 그래서 통화를 하면서 미국에 몇 개월동안 어학 연수라도 하면서 영어를 배우면 어떻겠냐고 하셨다. 나도 어학 연수같은 것을 가고 싶었지만 비용이 많이 들기도 했었고 나중에 미국 대학원 유학을 가려고 하는데 굳이 어학 연수가 필요할까 생각했었다. 그리고 비용도 문제였다. 학교 다니는 동안은 과외를 통해서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었는데 비싼 어학 연수 비용은 어떻게 감당할지도 문제였다.

외삼촌은 내 어머니께 얘기해서 나를 몇 개월이라도 어학 연수를 다녀올 수 있도록 지원해 주라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영어 공부를 하는 것보다 미국을 실제 경험하고 거기서 유학을 준비하면 좀 더 낫지 않겠냐는 생각에서였다. 나도 2개월 정도를 UC 버클리에 있으면서 공부하기는 했지만 미국 문화와 그 곳 사람들을 좀 더 경험하고 싶었고 거기서 유학을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몇 주간 고민하다가 내가 입학하고 싶은 대학원이 있는 학교의 어학 센터를 가기로 결정을 했다.

그렇게 결정한 학교가 애리조나의 투산(Tucson)이라는 도시에 있는 애리조나 대학교(University of Arizona)였다. 사실 어학 연수의 목적보다도 내가 이 학교의 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해서 교수님을 만나고 입학 관련처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목적이 더 컸었다. 서울대 경영대에서 본인의 지도 교수님이셨던 박진수 교수님께서 사실 이 학교의 비즈니스 스쿨, 엘러(Eller) 비즈니스 스쿨에서 박사를 받으셨다. 한국 사람들은 애리조나 대학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내가 공부하려는 분야였던 MIS(Management Information System, 경영정보시스템) 분야에서는 미국에서 탑 5 안에 드는 좋은 대학원이었다. 주립 대학이었기 때문에 어학 센터의 어학 연수 비용도 다른 학교에 비해서 훨씬 저렴했고 생활비도 적게 들었다.

2009년 6월에 어학 연수를 위해서 애리조나의 투산이라는 도시에 다시 오게 되었다. 투산은 남부 애리조나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애리조나 주 전체에서는 피닉스(Phoenix)에 이어서 두번째로 큰 도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도시의 이름을 딴 현대자동차의 “투싼”이 널리 알려져 있다.

애리조나에 도착할 때 비행기에서 보니 도시가 완전 황토색의 사막에 군데 군데 선인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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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학기 (2) – 미국 MBA와 경영대 박사 과정 도전

서울대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다가 2007년 말 미국 MBA 프로그램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먹고 미국 경영대 진학 시험인 GMAT(Graduate Management Admission Test)을 공부하고 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카이스트 시절 벤처 기업에 근무한 경력과 학교 졸업 후 병역특례를 하면서 중소기업에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MBA 프로그램에 진학해서 미국 취업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당시 지원한 학교가 하버드의 HBS(Harvard Business School), MIT의 Sloan, 스탠포드 GSB(Graduate School of Business), 유펜의 Wharton, 컬럼비아, NYU, 시카고, UC 버클리, 미시간 대학교(앤 아버), UCLA의 Anderson으로 10개 학교였다. 각 학교마다 작성해야 되는 에세이도 너무 다르고 원서비도 너무 비쌌기 때문에(학교당 거의 250달러 이상이었다) 10개 학교만 지원하기로 하고 분주하게 필요한 과정을 거치기 시작했다.

약 6개월 정도 열심히 원서 작성을 끝내고 설레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하나씩 불합격 결과가 도착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지원한 10개 학교 모두에서 리젝트를 받게 되었다. 물론 하나라도 가기 힘든 탑 10의 학교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하나쯤은 기대했었는데 몇 주동안 실망감과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지금(2015년)은 7년이 지난 후이기에 왜 내가 다 떨어졌을까 생각을 해보면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 2008년에 미국에 서브프라임 위기가 터지면서 미국 대학원의 경쟁률이 급격히 높아졌다. 원래 경기가 좋지 않으면 미국 직장에 정리해고가 많아지고 구직자들은 직장을 찾기가 더 힘들어 지면서 많은 인력이 갈 길을 찾지 못한 채 고용 시장에 나오게 된다. 이런 경우 많은 사람들이 대학원에 들어가 새로운 학위를 따서 더 높은 연봉과 대우를 받을 것을 갈망하게 된다. 그리고 대학원에 들어가서 학위를 따는 몇 년 동안 경기가 회복되어 나중에 대학원을 졸업할 쯤에는 직장을 찾기 쉬울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공부를 새로 시작하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의 경기가 2008년 바닥으로 추락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MBA에 지원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입학 허가를 받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 되었다.
  • 에세이의 영어가 부족했고 내 이야기를 잘 풀어나가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영어가 부족하기도 했는데 짧은 시간 안에 에세이를 작성한다고 좀 더 깊이 고민해보지 못하고 MBA 에세이를 쓰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중에 영어를 잘 아는 지인에게 이 에세이를 보였을 때 영어가 많이 부족하다고 진심 어린 조언을 많이 듣기도 했었고 MBA 에세이 질문에 나만의 대답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 것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상 나만의 이야기를 심사관들의 마음을 움직일만큼 풀어내는 것은 그 당시 나의 역량에 비추어 부족했다고 생각된다.
  • GMAT 점수가 충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 당시 탑 10 비즈니스 스쿨의 MBA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보통 정해져 있는 마지노선이 700점이었다. 그 해에 5번의 시험을 봤지만 본인은 680점이 최고 점수였다. 그래도 그걸 감수하고 지원을 했는데 아무래도 커트라인 밑의 점수가 어느 정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 당시 다른 탑 스쿨에 가신 분들의 점수를 보면 700점이 분명히 안되는 분도 있었다. 입학 여부가 모든 것이 복합적인 것이지만 GMAT 점수가 높았으면 좀 더 가능성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 한국 분들의 추천서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신뢰를 주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학교 다닐 때 벤처 기업에서 1년 반, 그리고 졸업 후 병역특례 회사에서 3년 정도를 일하면서 그 당시 상사분들께 추천서를 받았는데 우선 다닌 기업들이 삼성이나 LG 같은 이름 있는 대기업들이 아니었고 글로벌 기업도 아니었다. 그리고 한국 분들에게 추천을 받아서 입학 사정관들이 그 분들의 추천서를 신뢰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MBA 프로그램에 올리젝을 당한 후에 마음을 추스리면서 다음 진로를 준비했다. 우선은 MBA를 가기에는 내 상황과 커리어가 부족한 것 같았다. 그래서 이제는 일반 대학원으로 마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2008년 8월에 경영대를 졸업하고 미국 경영 대학원에 박사를 지원할 생각을 갖게 되었다. 경영대의 경우 석사 없이 바로 박사를 갈 수 있는데 물론 그 경쟁은 아주 치열하다. 미국에서는 경영대 박사를 많이 뽑지도 않거니와 전세계의 수많은 인재들이 경쟁해서 입학하려고 하는 곳이라서 들어가기가 정말 힘들다. 경영대 박사에 비하면 MBA는 상대적으로 들어가기가 쉽다. MBA에 비해서 요구되는 GMAT점수도 낮거니와 (보통 탑 10스쿨의 경영대 박사 과정을 가려면 GMAT점수가 750정도 되는 경우가 많다) 몇 천명에 달하는 MBA 입학자에 비해 같은 학교의 경영대 박사 과정 학생은 10명도 채 안 될 정도로 소수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뚫고 경영대 박사를 받게 된다면 미국 내에서의 취업은 상당히 용이하다. 괜찮은 학교에서 경영대 박사를 받고 졸업했다면 경영대 교수가 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고 연봉도 다른 학과에 비해 경영대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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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학기 (1) – 처음 본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바라보면서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정사각형으로 나눠진 블록에 촘촘하게 채워진 장난감처럼 보이던 도시는 조금씩 그 윤곽을 선명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때는 2006년 6월, 서울대 경영학과에 편입을 하고 한 학기를 마친 후였다. 그 전에 다니던 카이스트에서는 지독하게 방황하고 그것을 만회하느라 교환학생이나 어학 연수의 기회조차 잡지 못했는데 새로 시작한 대학 생활에서는 이전에 못 해본 것들을 다 해보고 싶었다. 서울대에 입학하자마자 다음 학기 외국 교환 학생의 기회를 알아보고 그 해 여름에는 미국에서 여름 학기를 들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미국 유학을 꿈꿔왔다. 사실 대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나는 나중에 미국으로 유학 가게 될 것이라고 내 삶을 미리 규정 짓고 있었다. 그러면서 친구들에게도 나는 나중에 어떻게든 미국에서 공부할 것이라고 얘기하면서 내 자신이 내가 미리 계획한 삶에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조금씩 울타리를 쳐놓기 시작했다.

왜 미국이었을까? 막연하게 외국에서 공부하는 것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미국 유학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 그리고 이민자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할 수 있게 해주는 나라. 그리고 우리나라의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거쳐온 나라. 중학생 때 몇 번이고 읽었던 홍정욱의 “7막 7장”의 이야기는 미국에 대해 더 큰 동경을 가지게 해 주었다. 조그만 동양의 한 작은 나라에서 온 소년이 갖은 고생 끝에 하버드에 들어가고 최우등 졸업을 하기까지의 여정은 미국 사회에 동경을 가지고 있던 한 소년의 마음을 충분히 설레게 만들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영어 원서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대부분의 저자가 미국 유수의 대학의 교수님들이였고 카이스트에서의 교수님들의 이력을 봐도 대부분이 미국에 대학원을 유학 가서 박사 학위를 받아 한국에 오신 것을 알 수 있었다. 미국은 내가 배우는 학문의 선진국이었고 그 곳에 가기만 해도 동경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그런 장소였다.

그런데 그렇게 가고 싶던 그 미국을 나는 이전까지 한번도 갈 기회가 없었다. 조기 유학을 가지고 못했고, 해외 여행의 기회도 없었거니와, 군대와 병역 특례 등 여러 상황 때문에 외국에 나가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 힘들었다. 병역 특례로 중소기업에서의 복무를 끝냈지만 3년 동안의 회사 생활을 하면서 엔지니어로서의 삶에 회의를 느끼게 되어 나는 다른 길을 찾아보기로 했었다. 여러 길을 알아보다가 새로 찾은 기회가 편입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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